Page 135 - 양산시립독립기념관 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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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민 조시
1921 | 47.0×25.5
이영민(1881~1962) 吊故右山尹顯振君
본명 이희수(李熙守), 호 벽소(碧笑). 전남 순천 출신. 서예와 문장 氣宇文章一世珍 기개와 문장은 한 세상의 보배건만
이 뛰어났다. 한성사범학교를 졸업한 후 동아일보 순천주재기자 飜然出海入西秦 번연히 나라밖으로 나가 중국으로 들어갔네
를 지내고, 남초등학교에서 10여 년간 교편생활을 하였다. 1910년 愁多風雨孤燈夜 시름 많아 비바람에 홀로 등불 켜고 밤새웠고
중국으로 건너 가 오세창, 여운형, 송진우, 안재홍 등과 독립운동 夢到鄕山萬里春 꿈속에 이른 고향의 산은 만 리길 봄빛이었지
을 논의하고 구국한 후 진도의 3·1운동을 주도하였다. 1926년 순 結社好交天下士 모임 묶어 좋히 천하의 선비와 사귀었고
천에서 박병두 등과 순천 광양지역의 소작쟁의를 이끌었고, 1928 著書醒起國中人 글을 지어 나라의 사람들을 깨우쳐 주었다오
년 조선공산당 활동으로 체포되었다. 서예와 한시, 판소리 등에 일 如何早作泉臺客 어찌해 일찌감치 황천의 나그네 되어
가견이 있었다. 使吾生淚滿巾 허망히도 나의 삶을 눈물 수건 흥건하게 하는가
신유년(1921) 가을, 취산 이영민 번역 : 김승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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