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34 - 양산시립독립기념관 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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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양수 조시
1921 | 61.0×26.5
김양수(1896∼1971) 吊故右山尹顯振君
1925년 하와이에서 열린 태평양회의에 서재필, 김활란 등과 함께 禽之爲鳳獸爲麟 새라면 봉이 되고 짐승이라면 기린이 되리니
참석, 성명을 발표하여 총독정치의 실상을 폭로하였다. 1926년과 在學當年㝡是仁 공부하던 그 날에는 가장 어질었었지
1927년 뉴욕에서 『삼일신보(三一新報)』의 주필로 활동, 교포들에 閱世風霜凌萬里 세상의 풍상을 맞으며 만 리 밖을 넘었고
게 독립정신을 일깨웠다. 1931년 영국으로 건너가고, 다시 중국을 出群才藝感千人 뭇사람을 뛰어넘는 재주는 천 인을 감동시켰지
거쳐 귀국. 중국에서 임시정부요인들과 만났으며, 김두봉 등과 한 胸中幽憤無相識 가슴 속 그윽한 울분을 서로 아는 이 없었거니와
글운동에 관한 의견을 나누었다. 1935년 조선어학회에 참여하여 海內親朋問幾眞 해내에 친한 벗들 진심을 물을 자 몇 이었던가
사전 편찬사업의 재정을 뒷받침하였다. 事業未成君獨去 공업을 미쳐 이루기도 전에 자네 홀로 떠나니
天涯悵望淚霑巾 하늘끝 창망히 바라보며 눈물로 수건 적신다네
신유년(1921) 가을 약영 김양수 번역 : 김승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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