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05 - 양산시립독립기념관 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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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도중학교, 학생들에게 항일정신을 가르치다
1919년 신평에서 3.1운동을 주도했던 통도사의 지방학림은 현재의 보광중학교
전신에 해당하는 중등교육기관인 통도중학교로 1934년 4월 1일 개설되었다. 통
도중학교는 정원 150명의 4년제 학교였다. 통도중학교 학생들은 통도학림의 항
일정신을 계승하여 다른 어느 학교보다 항일의식이 강했으며, 이러한 연유로 일
본 경찰의 요시찰 (要視察, 사상이나 보안 문제 따위와 관련하여 행정 당국이나 경찰이 감시) 학교였다.
당시 교사로 근무하던 조병구는 1919년 고종 장례식 때 망국의 한을 읊은 만장
시를 동료교사들에게 알려주었고, 한문교사인 김말복 이 이를 국한문시간에 학
생들에게 가르쳤다. 순천 선암사에서 유학왔던 이승권이 만장시를 공책에 적어
그 뜻을 새기곤 하다가 일본 경찰의 검문에 발각되었고, 1941년 9월 양산경찰서
형사대가 급습하였다.
당시 통도중학 학생들은 만장시뿐만 아니라 임시정부의 김규식 박사가 쓴 사향
시 思鄕詩 까지 교사들로부터 배워서 줄줄 외우고 있었다. 이와 같은 분위기로 인해
학생들은 일본 연호인 쇼와 昭和 를 사용하지 않고 경진년과 같이 간지를 사용할
만큼 항일의식이 높았다. 조병구는 수업시간을 통해 한용운, 김창숙, 여운형, 안
재홍 등과 같은 독립운동가들을 학생들에게 소개하면서 꾸준히 독립심을 고취
시켰다.
양산경찰서는 관련된 교사 전원과 간부학생 모두를 연행하여 고문과 가혹한 수
사를 하였다. 혐의가 없는 교사와 간부학생들은 석방되었으나, 조병구와 김말복
은 1941년 12월 부산 형무소에 수감되었다. 두 사람은 1942년 5월 치안유지법 위
반으로 징역 2년을 선고 받고 남은 형기를 복역한 후 1943년 11월 30일, 12월 14
일에 각각 출옥하였다.
이처럼 일제강점기 말기까지 학생들의 항일운동이 계속될 수 있었던 것은 통도
사지방학림 학생들의 항일정신이 계승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김말복에 대한 내용은 72~73쪽 ‘통도사 지방학림과 김말복’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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