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9 - 양산시립독립기념관 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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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현진과 신익희의 관계
신익희는 일본유학시절 우산 윤현진과 함께 조선유학생학우회의 핵심적 인물로 활동하며, 『학지광 學之光 』의 발간을 주도하였다.
당시 유학생학우회 제5기 (1915~1916.2.) 회장이 신익희였고, 총무가 윤현진이었다. 신익희는 윤현진보다 2살 많았지만 친구이자 동
료로써 상해 망명 이후에도 관계를 지속하였다. 대한민국임시정부(상해)의 주요 보직을 나누어 맡았으며 (내무차장 신익희, 재무차장 윤현
진) , 대한민국임시정부 국무원 활동도 함께 하였다.
제2대 국회의원 시절 양산을 찾은 신익희 선생은 박순천 여사와 함께 2번이나 윤현진의 집 (현 중부동 256) 을 직접 찾아가, 윤현진의
아들 윤동건에게 “내가 죽고 아버지가 살았어야 했는데, 아버지가 죽고 내가 살았다.”라며 안타까워한 일화가 유명하다. 또한 직
접 윤동건을 데리고 양산 남부시장 등 선거 유세장을 돌며, “윤현진 선생의 항일독립정신을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고 연설하기
도 하였다. 윤현진과의 특별했던 인연이 그의 아들에게까지 이어진 것이다. 1959년 춘추공원에 건립된 기념비도 윤현진에 대한
신익희 선생의 애정을 잘 반영한다.
해공 신익희(海公 申翼熙, 1894-1956)
- 1894 경기도 광주 출생, 호는 해공 海公
- 1910 한성외국어학교 영어과 졸업
- 1912~1917 일본의 와세다대학 早稻田大學 정치경제학부
- 1917 서울 중동학교 中東學校 교사, 보성법률상업학교 교수
- 1919 3.1운동 후 상해 망명 상해 임시정부 내무차장 겸
내무총장 서리
- 대한민국임시정부(중경) 내무부장
- 1945 독립촉성국민회 부위원장
- 1947 남조선과도입법의원 의장
- 1948 제헌 국회의원 당선, 제헌 국회 국회의장
- 1955 민주당 창당 민주당 대표최고위원
- 1956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유세 중 서거
- 1962 건국훈장 대한민국장 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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