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2 - 양산시립독립기념관 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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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익희 편지
         1951   |  19.0×26.5

         입월후(立月侯)이 오래 끈치었돈중 혜후(惠侯) 안상(案上)에 노히니 청모(靑眸)를 씻으며 재삼읽고 희희(戱喜)
         하기 마치 않는 바이요 요사이 등하혹돌(登夏酷突)에 동지의 기체만강하고 제절이 일안(一安)하신 듯하니 반
         가운 일이요 나는 작설에 솔춘만장하야 무고(無故)히 지내나 국보(國步)가 간난(艱難)하고 주적(主賊)을 제
         (除)치못하니 주위(晝胃)로 하심동동(夏心洞洞) 소조(所助)가 별(別)로 없음을 한(恨)하는 바이요 직(職)이 중
         하나 재재충(才才充)치 못하니 이럴때마나 선대인(先大人) 같은 혜민유위(慧敏有爲)의 사(士)에 대(對)한 회억
         (懷憶)이 더욱 간절하오 천(天)이 사방(斯邦)에 혜(惠)를 앳기어 그런 유위(有爲)의 사(士)를 잃게 하고 권세함
         함(拳世淊淊) 나같은 용속(庸俗)으로도 더욱 익우(益友) 없다는 고독(孤獨)의 탄(歎)이 깊은 바이요 양산과 부
         산 사이가 불원지척(不遠咫尺)인데 더욱 동지의 택(宅)에 한번 방문치 못함이 어찌 본의(本意)이겠오 실(実)로
         부득이(不得已)한 때문이요 일후면서(日後面敘)의 기(機)를 기다리며 이만 그치오 더욱 동지(同志)의 방가(邦
         家)를 위한 공헌(貢獻)을 비는 바이요

         단기 4284년(1951) 8월 7일 신익희 배상(拜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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