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7 - 양산시립독립기념관 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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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현진과 교류한 사람들
석재 서병오(石齋 徐丙五, 1862~1935)
서병오는 개항기와 일제강점기에 활동했던 서화가이다. 흥선대원군에게 서
화를 배웠고 청나라 여행 중에 민영익, 포화와 교류하며 그들의 화풍에 영
향을 받았다. 대구를 중심으로 국내에서도 많은 활동을 하였는데, 주요 활
동 사항으로는 국채보상운동 (1907) , 대한협회 (1908) , 대구은행 감사 역임 등이
다. 사군자를 많이 그렸는데, 특히 난과 대나무가 주를 이룬다. 서병오의 초
기 작품에는 중국에서 발간된 화보나 흥선대원군의 영향이 나타난다.
1901년을 전후하여 중국 상해로 가서 망명 중이던 민영익과 교류하면서 많
은 사람들을 소개받았다. 그 중에서도 유명한 중국인 서화가 포화 蒲華 ·오창
석 吳昌碩 등으로부터 영향을 많이 받았으며, 대나무나 연꽃 그림은 포화의 영
향을 받은 구도와 필치가 보인다. 서병오가 문기 文氣 있는 묵죽 墨竹 을 그린 것
은 포화의 영향이 크지만, 1920년대에 이르러서는 대나무를 거침없고 호방
하게 그리는 등 자신만의 화풍을 형성하였으며, 그의 호를 따서 ‘석재죽 石齋
竹 ’이라고 불리기도 하였다.
서예의 경우, 역대 명가들의 글씨를 학습했다. 특히 옛 예서 隸書 인 고예 古隸 에
관심이 많았고, 그 외에 김정희의 추사체나 당시 상해에서 유행하던 하소기
체 何紹基體 의 영향도 받았다. 경봉스님이 머물던 극락암에 걸린 ‘삼소굴 三笑窟 ’
현판 글씨도 서병오가 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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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죽도
일제강점기 | 33.3×136.5
묵죽도는 석재 서병오가 우산 윤현진
군의 강인한 기개를 칭송하며 대나무
그림을 감상하라고 그려준 것으로 이
를 통해 석재와 우산의 교류가 상당
했음을 잘 보여준다.
석재 서병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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