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6 - 양산시립독립기념관 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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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평만세운동



































         3월 5일 한용운의 밀명을 받은 오택언은 독립선언서를 한가득 가지고
         통도사에 도착하였으나 3월 7일 밀고로 인해 주동자로 피검되어 서

         울로 압송되었다. 그럼에도 만우스님           양대응, 梁大應 을 중심으로 김진옥     金鎭
         玉 , 박세문, 이기주 등과 함께 거사는 차질없이 추진되었다.
         만우스님은 통도사 지방학림          (현 보광중학교) 의 학생대표 김상문      金祥文 , 통

         도사 강원 승려 등과 함께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3월 13일 신평 장날
         을 택하고 만세운동을 진행하기로 하였다.
         예정대로 3월 13일 신평 장날에 하북면 줄다리기대회를 빙자하여 군
         중집회가 개최되었으며, 거사 당일 통도사 부속 보통학림 및 지방학
         림 학생들과 수십 명의 불교 전수부 학생, 승려 등이 줄다리기 군중

         및 장꾼들과 합세하여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학생들은 독립선언서
         를 낭독하고 전단을 배포하면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는 시위를 감행
         하였다.

         뒤늦게 사건을 접수한 헌병경찰이 현장을 급습하자 군중들은 사방으
         로 흩어졌고 주모자 김진옥은 체포되었으며, 김상문은 피신 후 상해
         대한민국임시정부 특파원으로 활동하였다. 당시 하북면사무소에 근
         무한 박세문은 거사에 참여하고 주동자들을 피신시키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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