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9 - 양산시립독립기념관 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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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한용운의 집에서 정병헌이 인력거로 선언서 3천 장을 중 문 그대가 한용운의 부탁으로 배포한 선언서는 이것인가. 이
앙학림 기숙사로 가지고 돌아와서 학생 40명에게 배포하 때 「선언서」라는 제목의 인쇄물을 보이다.
도록 하였는가. 답⃞ 그렇다.
답⃞ 그렇다.
문 그대는 국민대회 國民大會 를 아는가.
문 그대는 그 중의 4장을 우편으로 보냈는가. 답⃞ 모른다.
답⃞ 그렇다. 양산군 통도사에 있는 신구담·신화수 2인에게 우
송하였다.
문 그리고 한용운은 그때 3월 1일에 독립선언을 하니 파고다
공원에 모이라고 했는가.
답⃞ 그렇게 말했으므로 나는 3월 1일에 파고다 공원에 갔었다. 본 신문은 조선총독부 재판소 통역생 오다미츠루(尾田滿)의
통역에 의해 이를 행하고, 위 녹취한 바를 동시통역에게 읽어
문 파고다 공원에서부터 경성 시내를 독립만세를 부르면서 들려주었던 바, 틀림없다는 뜻을 승인하고 다음에 서명·날인
돌아다녔는가. 하다.
답⃞ 그렇다. 파고다 공원에서 종로통으로 나와서 대한문 앞까
지 갔었다. 통역 조선총독부 재판소 통역생 오다미츠루(尾田滿)
문 그밖에 그대는 독립만세를 부른 일이 없는가. 작성일 대정(大正) 8년 3월 14일
답⃞ 그러한 일은 없었다.
서기 경성지방법원 검사국
문 그대는 3월 5일에 양산군 통도사로 돌아갔는가. 조선총독부 재판소 서기 나가세 세이노스케(長瀨誠之助)
답⃞ 그렇다. 신문자 조선총독부 검사 야마자와 사이치로(山澤佐一郞)
문 고향에서 독립운동을 하기 위하여 귀성했던 것이 아닌가.
답⃞ 그러한 일은 없었다. 시골에서 국장을 구경하러 왔다가 고
향에 돌아가 그 일을 말하면 늙은 부모님이 걱정할 뿐 아
니라 경성에 있어도 당분간 수업도 없으므로 집으로 돌아
갔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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