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0 - 양산시립독립기념관 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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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해 한용운의 독립운동


         1919년 3월 1일 오후 2시, 탑골공원 단상에서 시작된 만세운동은 2일 개성, 3일

         예산 등으로 이어졌고 19일에는 괴산, 21일에는 제주까지 이어져 전국 13도에 골
         고루 파급되었다. 이러한 만세운동의 확산 과정에서 불교계에서도 서울 만세운
         동을 준비하면서 지방까지 전개할 계획을 세웠다. 특히 한용운은 2월 28일 밤 중
         앙학림 학생들을 자기 집으로 불러 모아 수개월동안 준비한 독립만세운동 과정
         을 설명하고 3천여 장의 독립선언서를 나누어 주었다. 이날의 참석자는 김봉신,

         신상완, 김대용, 오택언, 김법린, 박민오 등이었다. 한용운은 학생들에게 독립선언
         서를 건네주고, 이를 시내에 배포하면서 만세운동을 전개하도록 하였다. 중앙학
         림 학생들은 한용운의 밀명을 위해 자리를 옮겨 긴급회의를 하였다. 가장 연장자

         인 신상완을 총 참모로 추대하였고, 백성욱과 박민오는 서울에 남아 연락망 및
         지휘를 맡았다. 각 지방을 담당한 불교중앙학림 학생들은 3월 1일, 서울 시내 만
         세운동에 참가한 후 독립선언서를 몸에 소중히 간직하고 그날 밤 각 지방의 사
         찰로 향하여 그 지방을 중심으로 만세운동을 지도하였다. 정병헌은 구례 화엄
         사, 김대용은 대구 동화사, 김법린과 김상헌은 동래 범어사, 김봉신은 합천 해인

         사를 담당하였다. 양산의 통도사 방면은 이 사찰 출신의 오택언이 불교중앙학림
         대표로 내려왔으며, 그 때가 3월 5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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