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27 - 양산시립독립기념관 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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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념사(追念辭)
                  오늘 고(故) 우산 윤현진 선생의 애국순열의 정신과 조국광복의 위훈을 칠세불망하기 위하여 그 업적을 각기(刻記)한 기념비를 건립하
                  고 제막식을 봉행함에 후배 김철수의 노생은 사모하는 감회 더욱 애절하나이다.
                  고어(古語)에 입덕실행은 불후라 하였으니 선생의 애국순열지덕은 영세불망일 것이오 날이 갈수록 더욱 빛날 것이라 오늘 선생의 위덕
                  을 추모하는 후배들이 영세불망비를 건립하는 것도 그 불후를 말하는 것입니다.
                  오호라 사람이 한번 나서 의에 죽으며 국가민족의 영광을 위하여 목숨을 바치는 것은 남자의 명예며 국민의 본분이라 하였습니다마는
                  이것이 범인으로서는 말하기는 쉬우나 행하기에는 어려운 것입니다. 더욱 오늘같이 사리사욕만을 일삼고 의와 애국을 모를 뿐만 아니
                  라 빙공영사(憑公營私)와 나라를 팔고 남을 짓밟기를 다반사로 하는 세상사회에 있어 나와 도에 모범이 되고 국가미족을 위하여 자기
                  의 물심을 희생한다는 것은 참으로 상상하기도 어려운 터입니다.
                  이런 말기적인 민족사회에 있어 국가의 자유를 위하여 전물심을 나라에 바친 우산 선생의 위훈이야 어찌 민족의 명예가 아니며 국가의
                  영광이 아니리오.
                  선생은 기미년 약약 운훈에 행선하여 멀리 상해에 건너가서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수립하고 그 관계로서 항일투쟁에 주야를 불고하고
                  침식을 불망하면서 사선에서 분투활약 하시다가 마침내 돌아오지 못한 몸이 되었으니 조국광복의 원훈이며 대한민국의 수립자이시다.
                  상해에 근거를 둔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내부운영이 거의 우산 선생의 운수가운데서 진전되었을 뿐만 아니라 재정부차장 이면서 실재
                  재정 책당자로서 중국 만주, 노령 등지의 항일투쟁 혁명군의 자금조달까지 하였으니 사실상 대한민국임시정부 산하의 항일운동 내조
                  자였던 것입니다.
                  선생은 향토 양산에 출생하여 어려서부터 상해에 유학하였으며 귀국하여 향토의 발전에 헌신하여 유식문화(維識文化) 등에 비약적인
                  공덕을 세웠는 것이며 시대적 향진에 실력을 갖추기 위하여 다시 일본에 건너가서 법률정치의 학업을 온축(蘊蓄)하였습니다.
                  선생의 인격과 덕망과 기예가 세인에 탁월하신데다가 시대적인 지식을 겸비하여 세대 영웅적인 지도자였던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선
                  생은 유연이 겸비하여 사람을 청함에 선생의 화덕의 기풍에 사람들이 부지중 감화되는가 하면 한편 불의에 사(思)할 때는 산천초목도
                  떨 것 같았습니다.
                  선생이 웃으면 사람들이 같이 웃고 선생이 노하면 좌우가 벌벌 떨었으니 선생은 한편으로는 도덕군자인가 하면 한편으로는 영웅호걸이
                  었던 것 같습니다.
                  선생은 일본 동경에 유학하면서 조국을 잃은 경술치욕에 분개하여 조국광복의 대지를 품고 동지를 만들며 자유성취의 시기를 호시탐
                  탐 하고 있었습니다.
                  선생은 동지들과 국사를 쟁(諍)하고 대거(大擧)의 기축을 꾀할 때에 몇 밤을  새움이 예사였던 것입니다.
                  선생은 자든지 먹든지 놀든지 말하든지 일하든지 자기를 말하고 사리를 생각하고 영달을 꾀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선생은 부유한 가정에 나시면서 전 가산을 국가와 사회를 위하여 탕진하였습니다.
                  선생이 일본에서 학업을 마치고 부산서 유식기단에 종사할 때는 국제정세가 세계 제1차 전쟁에 종말되기 때문에 조국광복의업의 때가
                  가까워진지라 그때의 군자금조달의 공작이였던 것이니 선생의 영웅적이면서 계획적인 두뇌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는 바입니다.
                  슬프다! 선생이 조국광복의 도상에 순사하신 그 의와 공은 영세불망의 위훈이였습니다만은 선생이 더 재세하셨더라면 그 충심과 혼첨
                  (魂瞻)과 위화력에 그 지략이 발휘하였더라면 조국이 오늘같이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우산선생이여! 오늘 이 나라에는 불의와 부정이 자행하며 부패와 부정이 충만하고 중상모략과 권모술수와 심지어 일국일족이 백일하
                  에서 기할 바 없기 되었을 뿐 아니라 그것이 잘난 것이며 훌륭한 것이 되고 양심의 동포를 억압발권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정치가들은
                  정권에 흐득이면서 동포를 그들의 영달과 부귀의 발받침으로서 권취와 기만과 혹사를 다반사로 하고 있습니다. 이런데 한편 국제정세
                  의 혼란한 가운데 국토통일은 기약이 없으며 오히려 공산당남침의 위험이 증가되고 있을 뿐 입니다.
                  이런 오늘의 국제 형편하에 선생의 기념비를 제막함에 선생의 소원인 조국의 자유와 번영이 성취되지 못하였고 조국이 선생의 위훈을
                  알지 못하는 것을 가슴 아프게 생각하는 바입니다.
                  우산선생의 사랑과 지도를 받아 미력이나마 선생의 뒤를 따르는 후배 철수는 오늘의 선생 기념비 앞에서 선생의 유지를 받들 것을 새
                  로히 맹서하는 바입니다. 그리고 선생의 위훈이 전세에 빛날 것은 물론이거니와 전국민이 본받고 분발할 것을 기원하면서 이에 추념사
                  를 올리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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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수영 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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