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18 - 양산시립독립기념관 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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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윤(李錫允, 1899 ~ 1986)
         하북면 삼감리 162번지에서 1899년 7월 21일에 태어났다. 이명은 석구 錫九 이다. 함경남도 안변군 문산면 사기리 석왕
         사에서 승려 생활을 하다가 1919년 5월부터 신상완과 함께 독립선언문을 등사하여 배부하는 등 독립운동을 전개하

         였다. 또한 1919년 6월 석왕사 승려 김태흡과 신상완, 김상헌, 신복성 등과 상해 임시정부의 독립운동 자금을 모으
         기 위해 활동하다 종로경찰서에 체포되었다. 당시 이석윤은 상해의 이종욱이 보내온 ‘대한승려연합회 선언서’를 받
         았고, 신상완으로부터 ‘조선독립 운동자금으로 약간의 출금을 바란다’는 서한을 받아 강원도 고성의 건봉사 주지
         이태련과 주승 정인목에게 전달하였으나 거절당하였다. 1919년 12월 23일 정치범죄 처벌령 위반과 출판법 위반, 보
         안법 위반 등으로 징역 6월을 선고받고 공소하여 1920년 1월 경성복심법원에서 벌금 30원을 선고받았다. 1920년 4
         월 철원애국단의 일원으로 강원도 지역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하다가 일본 경찰에 다시 검거되어 징역 6월형을 언도
         받고 옥고를 치렀다.
         1922년 5월 8일, 경기도 여주군 가남면의 남태희와 더불어 전라남도 대전군의 정순학으로부터 전달받은 군자금
         100원을 임시정부로 송금하였다. 그 후 이석윤은 서울에서 체포되어 남대문발 부산행 열차로 압송되는 도중에 탈

         출하였으나 청주군 남이면 가마리에 사는 동지 이중각의 집에서 체포되었다. 독립군 자금 모집 혐의를 받고 모진 고
         문을 당하며 조사를 받았으나 증거 불충분으로 1922년 7월 14일에 방면되었다.
         그 후 심한 고문과 기차에서 떨어질 때의 응혈로 폐질 상태가 지속되면서도 독립운동가의 보호와 사전 정보제공 등
         독립운동을 계속하였다. 1986년 10월 15일에 생을 마감하였다. 1977년 대통령표창,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수여하였다.























         獨立資金 募集者公判
         통도사학 리셕윤
         본젹츙청북도 진쳔군현  경상남도 량산군통도사학  리영준곳리셕윤 『本籍忠北鎭川郡現在慶南梁山郡通度寺學生李永俊事李錫允』은 본년사
         월쵸슌에경부션챠즁에셔 샹 가졍부에셔 나온김 셩『金大成』이란자와맛나셔  한민국졍부의신님장을밧아가지고 가졍부를위 야 자본금모집
         에착슈 야 안셩군『安城郡』등디에셔  우활동한 사실이잇슴을 당국에셔 탐지 고십월십 일에 안셩읍  로상에셔 톄포 야 취됴한결과  졍팔
         년 제령뎨칠호졍치에 관한범죄로 야 십이월팔일에 슈원지텽에셔 증역팔 월에쳐 얏               불복을 고 경셩복심범원에 상고 얏다더라

         독립자금 모집자 공판
         통도사 학생 이석윤
         본적 충청북도 진천군 현재 경상남도 양산군 통도사 학생 이영준=이석윤은 본년 4월 초순에 경부선 차중에서 상해 가 정부에서 나온 김대성이
         란 자와 만나서 대한민국 정부의 신임장을 받아가지고 가 정부를 위하여 자본금 모집에 착수하여 안성군 등지에서 매우 활동한 사실이 있음을
         당국에서 탐지하고 11월 14일에 안성읍 내 노상에서 체포하여 취조한 결과 대정 8년 제 영 제7호 정치에 관한 범죄로 하여 12월 8일에 수원지청
         에서 징역 8개월에 처하였는데 불복을 하고 경성 복심 법원에 상고 하였다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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