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11 - 양산시립독립기념관 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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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기(金炯璣, 1896 ~ 1950)
                  1896년 8월 9일 양산군 좌이면 유두리 (현 부산시 사상구 삼락동) 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김녕이며, 호는 동산 東山 이다.
                  부산 삼락동 낙동강변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사상역 앞에 있던 사립명진학교 (현 사상초등학교) 를 졸업하였다. 그 뒤 동래고등보통

                  학교를 거쳐 1916년 경성의학전문학교에 진학하였다. 1919년 4학년에 재학중일 때, 재경 경상도 유학생 회장을 맡으면서 3.1운동
                  에 참여하였다.
                  김형기를 비롯한 각 전문학교 학생대표들은 이갑성으로부터 해외에서의 독립운동에 관한 이야기를 전해들었다. 김형기는 교내
                  학생과 교회와도 접촉하여 유기적인 협조를 끌어냈다. 3월 1일 독립선언서를 서울 시내 곳곳에 배포하고, 탑골 공원에서 만세 시
                  위에 참여하고 십자로를 돌아 종로와 대한문을 거쳐 시위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3월 8일 하숙집에서 검거되었고, 11
                  월 6일 경성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 혐의가 적용되어 주동자 중 최고형인 징역 1년형을 선고받았다. 이후 공소하였으나 기각되
                  어 서대문감옥에서 1년의 옥고를 치렀다.
                  1920년 8월 30일 출옥하였으며, 1921년 경성의전을 5기로 졸업하고 6월에 의사면허를 취득하였다. 1922년 조선총독부 병원에
                  서 수련하였으며, 1924년과 1925년에는 각각 울산과 동래 기장 대변에서 공의 公醫 로 활동하였다. 이후 부산 복천동, 영주동, 대청

                  동에서 동산의원을 개원하여 운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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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형기 일제감시대상 인물카드
                              일제강점기   |  10.0×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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