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75 - 양산시립독립기념관 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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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말복(金末福, 1909 ~ 1985)
                  하북면 순지리 691번지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 통도사로 출가하여 통도사 지
                  방학림에서 신학문을 배우고 항일 의식을 키워나갔다. 1933년 일본으로 건너

                  가 나고야 불교전수학교를 거쳐 1936년 도쿄에 있는 명문 고마자와 駒澤 대학 불
                  교과에서 수학하고 1939년 3월 졸업하였다. 1939년 4월 통도중학교 교사로 임
                  명되어 불교학, 국한문, 국어, 동양사 과목을 가르쳤다.
                  당시 교사로 근무하던 조병구가 1919년 고종 장례식 때 망국의 한을 읊은 만
                  장시를 동료들에게 알려주었고, 한문교사인 김말복이 이를 국한문시간에 학생
                  들에게 가르쳤다. 순천 선암사에서 유학왔던 이승권이 만장시를 공책에 적어
                  그 뜻을 새기다가 일본 경찰의 검문에 발각되었고, 1941년 9월 양산경찰서 형
                  사대가 급습하였다.
                  이 사건으로 1942년 5월 부산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 혐의로 징역 2년형을

                  선고받고, 부산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다가 1943년 12월 14일 출옥하였다. 이
                  후에도 사상이 불순하다는 이유로 대구 관찰보호소에 소환되어 노역을 당하
                                                                                     김말복
                  였다. 이때 통도중학교는 1944년 3월에 강제 폐교되고, 해방 후 보광중학교로
                  재건되었다.
                  해방 후 통도사 주지 (1954~1957) 로 임명되어 수도승의 훈육과 종무 宗務 에 전력하
                  였으며, 이후 교육 보국의 이념을 가지고 다시 교육계에 투신하였다. 1964년 3
                  월 보광중학교 교장으로 취임하여 정년 퇴임까지 10여 년간 후진 양성에 이바

                  지하였다.
                  1985년 5월 하북면 순지리에서 입적하였다. 그의 묘소는 하북면 답곡리 솥발
                  산공원묘원 (하북면 삼덕로 솥발산공원) 에 자리하고 있으며, 추모비도 함께 세워져 그
                  의 높은 뜻을 기리고 있다. 1983년 대통령표창에 이어 1990년 건국훈장 애국
                  장을 수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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