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6 - 양산시립독립기념관 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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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계만세운동(1919.3.31.)
삼동면
신평장
통도사
웅촌면
배내골
상북면
원동면
석계장
양산읍내장
석계만세운동과 관련하여 일제가 남긴 유일한 기록인 『대정8년 조선소요사건상
황 大正八年 朝鮮騷擾事件狀況 』에는 3월 31일 석계에서 소요가 있었던 것만 밝히고 있을
뿐 구체적인 시위현황은 확인되지 않는다. 그러나 여러 정황들을 보면 석계만세
운동은 규모는 작았지만 실제로 일어났던 사건으로 판단된다.
석계는 지리적으로 양산읍과 신평 중간에 위치하여 사람과 물자의 이동이 많은
교통의 요지였기 때문에, 신평만세운동과 양산읍내 만세운동 소식을 빨리 접할
수 있었다. 또한 일제는 석계만세운동을 3월 31일로 기록했는데, 이 날짜는 석계
장날인 음력 2월 30일과 정확히 일치한다는 점이다. 이로 보아, 누구나 기억할
정도의 큰 규모는 아니었으나 분명 어떤 형태로든지 시위와 관련된 움직임이 있
었을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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