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92 - 양산시립독립기념관 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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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렬사 이야기
충렬사는 1696년 양산군수 조무훈 曺武勛 이 임진왜란 당시 활약한 조영규, 백수회 두 분의 충
의정신을 기리기 위하여 군민의 뜻을 모아 읍성 남쪽에 처음 세워졌다. 그 후, 1717년 (숙종 43)
에 물금면 가촌리에 건립된 송담서원에서 백수회 선생을 이전 배향하게 되었다. 1868년 (고종
5)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충렬사가 철거되자, 1870~1873년 양산군수로 재임한 손상
일 孫相馹 을 중심으로 철거된 충렬사 자리에 호조참판 조공비 趙公碑 를 세우고 치제 致祭 하였다.
그러나 일제강점기동안 치제는 중단되고 조공비는 옛 양산군청 뒤 느티나무 고목 아래와
논밭에 버려져 있었다.
1945년 광복과 함께 양산의 원로들은 춘추계를 만들어 교동 157-1 일원에 춘추공원을 조성
하고, 양산문화원 뒤 당산목 아래에 산재한 삼조의열비를 옮겨와 1949년 4월에 장충단 준
공비를 세웠다.
2007년 양산의 원로모임에서 춘추원 장충단의 정비 공론이 제기되었고, 현 삼조의열단은
비각도 없이 노천에 비바람을 그대로 맞고 있으니 이를 백로봉 서북쪽 마고산 자락 영지 靈地
에 충렬사를 재건하여 임란공신과 항일독립의거 유공 포상자를 함께 모시도록 하였다.
그리하여 2010년 사당, 재실, 내외삼문, 관리사 등의 기공식과 2011년 상량식 上樑式 을 진행
하게 되었다. 2012년 4월 24일, 춘추원 장충단의 삼조의열비 이전 고유제를 진행하고 삼조
의열비 3기, 춘추원건립기념비 2기를 충렬사의 재사 남단공간으로 이전하였으며, 마침내
2012년 9월 26일 준공 및 봉안식을 갖게 되었다.
당시 충렬사의 배향인물은 박제상, 김원현, 조영규 등 삼조의열 3인을 포함해 총 70명이었
으나, 2023년 독립유공자 3인의 위패를 추가 봉안하여 현재 73인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다.
충렬사의 구조
관리동, 재실, 사당 등 3단 영역으로 조성되어 있다. 제일 아래의 1단 영역에는 관리동, 안내
판이 있고, 충렬사 경내로 들어가는 외삼문 外三門 인 장충문 (裝忠門, 충을 널리 빛낸다는 뜻) 으로 가는
계단 시작부 중앙에 충렬사 참배 안내판이 있다.
장충문을 지나 충렬사 경내로 들어서면, 오른쪽에 제향을 준비하는 춘추재 春秋齋 , 왼쪽에 삼
조의열비가 있다. 중앙의 계단을 통해 내삼문 內三門 인 의열문 (義烈門, 의를 지킴이 굳세다) 을 통과하
면 73위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는 충렬사 忠烈祠 사당에 이르게 된다.
사당 정면에는 서문, 중문, 동문 등 총 3개의 출입구가 조성되어 있다. 사당 내부에는 제상 祭
床 이 마련되어 있으며, 중앙에 신라, 고려, 조선의 조정 충신 삼조의열 三朝義烈 3위, 왼쪽에 독
립유공자 42위, 오른쪽에 임란공신 28위가 모셔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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